원세개(위안스카이)는 청나라 멸망의 시기를 함께한 군벌 출신의 지도자였다. 원레개는 조선과도 인연이 있었다. 첫 인연은 임오군란 때였는데, 당시 명성황후 측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청나라의 군대에 바로 원세개가 소속해있었다. 당시에 높은 지위로 복무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후 갑신정변 진압 등 조선에서 활약을 이어나가는 등 조선에 있으면서 조선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홍장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청나라레 돌아와서는 변법자강 운동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원세개는 이들을 배신하고 서태후에게 이를 밀고한다. 서태후의 신임을 산 원세개는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후 원세개는 의화단 운동 진압하는 데도 공을 세운다. 시모노세키 조약, 신축 조약 등의 여파와 내부의 극심한 혼란으로 청나라는 혼란에 접어들었다. 망국의 길을 걷던 청나라는 신해혁명의 격랑 속에서 청나라의 중요한 군대를 지휘했던 원세개의 배신으로 끝을 맺게된다.
이후 차기 황제가 되고 싶었던 원세개는 쑨원과의 협의를 지키지 않고,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등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공화국이었던 자신의 국가를 제국으로 다시 바꾸었다. 언청난 반댜로 다시 황제를 내려놓고 공화국 총통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주변을 비롯한 민심은 떠나버렸다. 그렇게 원세개는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총통 자리를 내려놓게 되고, 엏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원세개의 일생은 지도자에게 있어 일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잘못된 신념,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에 있어 욕망은 민주적인 과정, 절차와 함께라면 비판과 그 비판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모두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세개는 자신의 정적을 살해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했다. 여러모로 청나라 말기와 공화국 성립의 과도기에 있어서 원세개는 중국 역사에 있어서 아픈 손가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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