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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탐구

동중서 업적 탐구하기

by 잘_살아보세 2022. 3. 18.

동중서는 한무제 당시 활동하던 유학자이며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상가이다. 특히 유교가 최초로 국교화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한 왕조는 잦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피폐해진 민중을 다스리고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수단으로 바로 유교가 채택된 것이었다.

 

그리고 유교는 이후 청이 멸망하기 전까지 중국의 통치 사상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동중서는 유교를 보편화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유교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하는 것을 한무제에 건의한다. 또 오경박사를 설치하여 유교를 교육받은 고급 인재, 엘리트 양성을 도모했다.

 

한무제는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를 정당화하는데 동중서의 의견을 많이 채택했다. 대표적으로 동중서가 주장했던 음양오행설, 그리고 천인감응설을 받아들였다. 우주는 양과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이 주가 되고, 음은 보조적인 의미로서 통치도 그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은 유교정신, 음은 어긋난 유교 정신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천인감응설은 임금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왕권신수설)이며, 따라서 왕조는 하늘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에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하늘은 자연을 통해 벌을 내린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천인감응설은 정당성 확보와 자연재해, 재난이 났을 때, 임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보면 한무제가 천인감응설을 채택한 것은 당시 승승장구하던 자신의 통치 상황에서 나온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동중서는 대일통(大一統)'을 주창하였다. 대일통은 하나의 임금, 하나의 왕조 아래에 통일성을 극대화하여 민족의 번영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말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과 일맥상통하며, 어찌 보면 동중서의 대일통 사상이 현대 중국 외교 전략의 기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중서는 한무제 시기 전반에 걸쳐 한무제의 통치 방향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한무제는 동주서의 태학 설립, 유교 국교 채택 등의 의견을 수용했다. 따라서 한무제의 왕권도 강했겠지만, 당시 동중서의 위상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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